
열한 살 딸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생각해 돈에 대해 교육하지 않았는데요, 이제는 스스로 간식도 사 먹고, 친구들 생일 선물도 준비해야 할 때가 돼 교육을 해보려고 합니다. 은행원이라 미성년자에게 체크카드를 발급해주는 업무를 하지만 사실 금전에 대한 개념이 다 생기기 전에 카드 사용부터 가르쳐주는 것이 맞는지 걱정됩니다. 어른도 무절제하게 쓰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금융 교육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최근 아이들은 현금보다 카드나 간편결제 이용이 더 익숙해져 있는 터라 매우 공감 가는 고민입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도 아이들은 11세부터 경제 개념과 용돈 관리 방법을 배웁니다. 이는 발달 단계상 자기 관리 역량을 키워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죠.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등교하기, 밥 먹기 전에 손 씻기, 숙제 제때 하기 등이 모두 자기 관리의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 금융 교육을 일찍 시작하는 나라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용돈 관리뿐만 아니라 저축과 투자 교육까지 실시합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 교육이 곧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초등학생의 금융 교육을 점점 더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추세입니다.
가정에서의 금융 교육은 대부분 용돈부터 출발하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기적인 용돈 지급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받는 경우는 아이가 스스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필요 소비 > 욕구 소비
처음 용돈을 받은 아이들은 즉시 모두 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탕후루 사 먹느라 연필을 못 샀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종종 만나죠. 문제는 이런 소비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저는 용돈을 받기 전 ‘소비 계획서’ 작성을 권장합니다. 부모가 주려는 용돈의 금액을 알려주고 아이가 일주일 단위로 필요한 물품과 예상 지출 목록을 적도록 한 뒤 함께 용돈의 적정 금액을 상의하는 방식이에요.
이 과정에서 아이가 계획한 소비 항목이 ‘필요 소비’에 속하는지, 단순한 ‘욕구 소비’인지를 함께 따져보며 우선 소비 순서를 알려줍니다. ‘소비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필요 소비가 욕구 소비보다 먼저’라는 원칙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자료 : 카드고릴라, 2023년 기준, 참여 1034명
요즘 아이들은 용돈을 카드를 통해 씁니다. 부모님이 계좌로 이체해주고, 아이는 체크카드나 선불카드를 이용하는 것이죠. 제가 가르치는 학급에서도 현금으로 용돈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현금 용돈은 점점 사라지고 카드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변화를 보며 부모님들은 고민이 커집니다. ‘어른도 관리하기 힘든 카드를 아이가 사용하는 게 괜찮을까?’라는 걱정 때문이죠. 다행히 최근에는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관리할 수 있는 어린이 전용 카드가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습니다. 체크카드는 만 12세부터 발급이 가능하죠. 따라서 11세 아이에게는 어린이용 선불카드를 추천합니다. 부모님이 앱을 통해 용돈을 충전해주면 아이가 체크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고, 보통 교통카드 기능도 탑재돼 있어 실용적이거든요.


금융 교육≠부자가 되기 위한 길
다만 어린이용 카드를 쓴다고 해서 아이가 곧바로 소비를 잘 관리하게 되는 것은 아니죠. 분명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와 함께 매주 소비 내역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이런 대화는 아이에게 소비를 감시하고 꾸중하는 것이 아닌 공감과 격려의 시간임을 알게 합니다. 부모의 경험은 그 어떤 교육 자료보다 효과적으로 작용할 겁니다.
꼭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금융 교육이 곧 부자가 되게 하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금융 교육은 아이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데 필요한 나침판임을 기억해주세요. 크고 작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과정이 아이의 성장에 좋은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이성강
이담초등학교 교사. 경기도경제교육연구회장, 경제금융교육연구회 운영진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24 대한민국 경제교육대상 부총리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가장 쉬운 초등 창업>, <꿀자와 시호의 우당탕탕 창업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