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2000건이 넘는 은퇴 컨설팅을 하면서 제가 확신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부모가 자녀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부모로부터 자녀의 독립을 말하지만 100세 시대에는 오히려 ‘부모가 먼저 독립을 선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에게 올인한 부모는 결국 자녀의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부모가 자녀의 집 작은방에서 “내가 너 키우느라 이렇게 됐다”라고 말하는 순간 가족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사연자님이 선 갈림길은 분명합니다. 노후를 선택할 것인가, 자녀를 선택할 것인가. 제 답은 이렇습니다. “노후를 선택하는 것이 결국 자녀를 위한 길입니다.”
지금부터 50대가 놓치기 쉬운 세 가지 진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기회비용의 잔혹함입니다. 지금 1억 원을 쓰면 단순히 1억 원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1억 원을 연 5% 복리로 20년 운용하면 약 2억 6000만 원이 됩니다. 유학 4년에 4억 원을 쓴다면 사실상 10억 원의 노후 자금을 포기하는 겁니다. 정년까지 남은 10여 년은 목돈을 만들 수 있는 골든 타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이중 정년의 함정입니다. 맞벌이 부부는 퇴직 시점이 다릅니다. 한쪽이 먼저 퇴직하면 가계소득이 절반으로 줄고, 남은 배우자까지 퇴직하면 가정의 현금 흐름이 급격하게 악화됩니다. 특히 자녀 유학을 보낼 정도의 가정은 대부분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건강보험료가 급등할 수 있습니다. 재산세, 관리비 같은 고정비는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숨어 있던 비용이 한꺼번에 드러나 큰 충격이 됩니다. 셋째, 숫자를 이기는 감정입니다. “우리 아이한테는 해줘야지”라는 마음은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만큼 냉정해져야 합니다. 명확한 금전적 경계가 건강한 관계를 만듭니다.
자산을 세 구역으로 나눠보세요
노후 대비와 자녀 지원 사이의 문제를 푸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3-Zone 자산관리 전략’을 제안합니다. 이는 자산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규칙을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RED Zone은 은퇴 후 30년의 기본 생활비 구역입니다. 매달 월 300만 원이 들어가는 걸로 상정했을 때 ‘300만 원×12개월×30년=약 10억 8000만 원’입니다. 부부 합산 수령할 국민연금이 월 200만 원 정도라면 약 7억 2000만 원이 보전되므로, 최소 3억 6000만 원은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건강보험료, 재산세, 관리비 등 고정비 지출을 버티지 못합니다.
✅ 3-Zone 자산관리 전략
YELLOW Zone은 자녀를 지원하는 금액으로, RED Zone을 확보한 뒤 남은 자산의 30~50% 안에서만 해결해야 합니다. 핵심은 ‘4년 총액 계약’입니다. 예를 들어 연 1억 원이 아니라 4년에 총 2억 원이라고 정하는 겁니다. 왜 이게 중요할까요? 연 단위로 주면 자녀는 ‘내년에도 주시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총액을 정해주면 완전히 달라져요. 1학년 때 8000만 원을 써버렸으면 나머지 3년은 1억 2000만 원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럼 자녀가 학자금 대출도 알아보고, 장학금도 찾고, 아르바이트도 하게 됩니다. 실제로 미국 대학생 70% 이상이 학자금 대출을 받고 일하면서 공부해요. 이게 진짜 경제 교육입니다.
GREEN Zone은 RED와 YELLOW를 배정한 뒤 남은 여유 자산입니다. 여행, 부모님 용돈, 손주 선물 등 마음 편히 쓰는 돈이죠. 이 영역이 없다면 이미 과소비 중이라는 것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부모의 재정 독립이 곧 자녀의 진짜 성장
금요일 저녁 퇴근 이후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실행 계획을 제시합니다. 부부가 함께 노후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면 자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볼 것을 권합니다. 자녀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계산해보니 우리 노후에 필요한 돈은 O억 원 정도야. 남는 △억 원의 40%인 □억 원을 네 유학비로 쓰기로 했어. 이건 우리가 인색해서가 아니라 75세에 너희 집 작은방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야.” 이처럼 구체적인 숫자가 관계를 지켜줍니다.
🧾 이번 주말에 시작해야 할 실행 플랜




65세 퇴직 후 35년을 더 사는 시대입니다. 자녀가 대학에 다니는 시간인 4년의 약 여덟 배죠. 어디에 더 많은 자산을 배치해야 할까요? 자녀에게 진짜 필요한 건 돈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부모입니다. 지원 한도를 정하는 건 자녀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자녀를 어른으로 키우는 마지막 교육입니다. 오늘, 부모 독립을 선언하세요. 당신의 노후가 안정돼야 자녀의 미래도 단단해집니다.
권도형
한국은퇴설계연구소 대표이자 은퇴설계 컨설팅 및 교육 전문가. 최근 빠르게 변화하는 은퇴 환경 속에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도서 <은퇴 재무설계 바이블>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