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해법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내려놓고 싶어요
2026.02
완벽주의는 우리의 성장을 촉진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괴롭히는 굴레가 되기도 하죠. 이서현 심리학자는 평범한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Q.

완벽하지 않은 제가 용서가 안 돼요. 잘하고 싶어서 아등바등하다가 실수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면 화부터 납니다.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자고 마음속으로 되새기는데 정작 그래야 할 순간이 오면 어렵기만 하네요. 나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이서현

필명 ‘서늘한 여름밤’으로 활동 중인 심리 코칭 전문가이자 작가.
펴낸 책으로는 <나는 왜 작은 실수에도 이렇게 힘들까> <나에게 다정한 하루>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등이 있습니다.

A.

완벽주의와 자기자비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라고 소개하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네요. 그럴 때마다 요술봉을 휘둘러 심리학자만 아는 주문을 외우면 완벽주의가 상쾌하게 사라지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주문을 알고 있다면, 저 자신에게 가장 먼저 요술봉을 휘둘렀을 것입니다. “코칭하고 나서 실수했더라도 속상해하지 말아라! 얍!” “강연에서 말실수한 건 잊어버려라. 얍얍!”이라고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주문을 알지 못합니다. 저 역시 여전히 잘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내고, 실수하면 무척 속상해하며, 기대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부끄럽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 하나는 알고 있습니다. 바로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도 저의 평범함을 마주한 일이 있었습니다. 책을 출간한 기념으로 지인의 서점에서 소규모 북토크를 열기로 했습니다. 10명 내외가 참석하는 작은 행사였기에 저는 ‘당연히’ 매우 빠르게 마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행사 시작 전까지 10명조차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서점 주인인 지인도 당혹스러웠습니다. ‘행사 홍보물을 더 잘 만들었어야 했나’라는 자책과 함께 ‘나는 심리학자로서 매력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라는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아니, 어쨌든 신청자가 있었던 것 아닌가요? 왜 이런 일로 그렇게 속상해하나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축하합니다.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완벽주의적인 기질을 타고난 저 같은 사람은 이런 작은 실수와 실패에도 쉽게 좌절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심리코칭에서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분들을 만나면 저는 자기자비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자기자비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마음 챙김으로,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수하더라도 감정의 동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일이 기대대로 되지 않더라도 어른스럽게 넘길 줄 알아야 한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죠. 혹은 고통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고통을 느끼는 자신을 다시 비난하기도 합니다. ‘겨우 이런 일로 힘들어하다니’ ‘나는 정말 나약하다’처럼요. 자기자비를 실천하는 첫 단계는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잘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수를 하면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슬플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잘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실수를 하면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슬플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자비의 두 번째 요소는 보편적 인간성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통을 겪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맡고서 못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실수하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이 좌절되면 속상함과 실망감을 느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초연하고 감정의 동요가 없다면 그 사람은 초인이거나 사이코패스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일희일비합니다. 속상했다가도 맛있는 저녁 한 끼에 회복하고, 화가 났다가도 친구들과의 메시지에 웃음이 터집니다. 좌절을 겪고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심리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빠져나오고 싶다면, 자기자비의 세 번째 요소인 자기친절을 실천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자기친절이란 고통스러운 순간에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안정시키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는 태도입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입니다. “만약 내 친구가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줬을까요?”  제가 아끼는 친구가 북토크 완판에 실패했다면 “네 탓이 아니야. 연초라 사람들이 정신없는 시기여서 신청을 많이 하지 못했을 거야”라고 위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너를 만나러 온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어때?”라고 제안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저의 북토크는 ‘사람이 적게 와서 실패한 행사’가 아니라 ‘소규모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행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행사를 더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참여자에게 나눠줄 엽서와 스티커를 제작했습니다. 어느새 실망감은 옅어지고, 제 마음속에 설렘이 피어나더군요.

처음부터 자신에게 너그러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가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넘어짐이 있었는지를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걷기 위해 딱 두 가지를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걷는 것,
그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걷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너그럽지 못했던 순간에 집중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떠올리고 그것을 실천해보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놀라울 만큼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여전히 너그럽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 속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범한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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