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해법
우리 사이, 어디까지가 좋을까요?
2026.09
피곤하지도, 서먹하지도 않게. 누구와도 건강한 ‘관계의 바운더리’ 기준을 세우는 법.

Q.

매일 만나는 동료들, 가끔 보는 동네 이웃들, 엄마 아빠 모임까지.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잘 지내고 싶은데, 어디까지가 좋은 걸까요?

유세미

관계, 소통, 리더십 전문가이자 작가, 기업 강연가. 유튜브 채널 ‘유세미의 직장수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 ‘관계의 내공’ ‘나는 왜 회사만 가면 힘들까?’ 등이 있다.

A.

우리는 살아가며 인간관계에 다양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누군가와 갈등이 시작되면 마치 내 목덜미를 잡힌 것처럼 온종일 신경이 쓰이고, 에너지도 빠르게 고갈되지요. 그래서 일상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편안한 우리들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Step 1.
서로의 영역은 지키는 겁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자고 작정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동네 수영장에서 자주 만나던 이웃 주민과 친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뜻하지 않게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을 알게 됐고,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백방으로 인맥을 동원해 문제 해결을 도왔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입니다. 괜찮은지 물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내 얼굴을 봐서라도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 등 이런저런 말을 보태게 됩니다. 물론 이웃을 위한 조언임은 틀림없지만 내가 베풀었다고 마음껏 참견할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거리낌없이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행동은 결국 사이를 깨뜨립니다. 건강한 거리를 위해 발휘해야 할 영민한 테크닉은 무엇일까요? 과감하게 한발 물러서는 것입니다. 진심을 전하고 나서는 아무런 생색이나 조언은 하지 않는 거죠. 이것이 지켜야 할 예의이고 거리입니다.
Step 2.
조언에도 타이밍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까워진다는 건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내 생각과 경험을 쏟아부으며 너무 바짝 다가서려 하지 마세요. 들어주기만 해야 할 때인지 의견을 건네도 좋을 때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꼭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내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보통 조언이라면서 쏟아내는 말 중에는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씀씀이가 헤픈 후배에게 ‘그렇게 돈 쓰다가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한다’라고 말하고 나면 내 마음은 어떤가요? 속이 다 시원하다면, 그 말은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금 하려는 말이 상대에게 필요한 지도 생각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얘기해줘도 될까?’라는 식으로 가볍게 허락을 구해보세요. 좋은 조언은 상대의 삶에 내 답을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하나의 의견을 건네는 일에 가깝습니다. 말을 건넨 뒤에는 상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한발 물러서는 것까지가 조언입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어렵지요.
Step 3.
불편한 감정은 한 박자 늦춰도 괜찮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아이들의 안전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 사이지만 각자의 의견은 다를 수 있지요. 서준 엄마가 이야기하는 도중 하윤 엄마가 말을 끊고 나섭니다. “자기는 늦둥이라 그런지 걱정이 많네.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 아닐까.” 말이 끊긴 서준 엄마는 사람들 앞에서 당황스럽고 불쾌할 수 있습니다. ‘왜 말을 끊냐’ ‘그게 뭐가 과하냐’며 발끈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죠. 이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원칙은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고, 욱하고 올라온 감정을 한 박자 늦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걱정이 많다’라는 것은 상대의 해석일 뿐입니다. 정확하지도 않은 해석 때문에 곧바로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거죠. 그렇다고 불편한 감정을 참고 넘어가라는 뜻도 아닙니다. 후회할 말을 내뱉기 전에 잠시 멈춰 내 마음과 생각을 제대로 정리한 후 표현하자는 뜻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누구에게나 통하는 하나의 정답이란 없습니다. 억지로 애쓴다고 마음처럼 되지도 않지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는 없지만 어디까지 다가가고 어디서 멈출 것인지 나만의 기준을 세워두면 관계 앞에서 덜 흔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가 무엇에 힘들어하는지, 무엇에 기뻐하는지 나와 같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인간관계는 서로의 거리를 가늠하며 온도가 맞아야 깊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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