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해법
당신은 어떤 어른입니까?
2026.10
흔들리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역사 속 인물들에게서 그 지혜를 찾아봅니다.

Q.

나이 먹은 만큼 성숙해지고 싶은데, 아직도 자주 흔들립니다.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홍순지

현장에서 강의하는 역사 교육자이자 작가. 서울시립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역사 에세이 <사심을 담다>, 역사 교양서 <괜찮은 어른> 등의저서가 있으며 역사와 사람 사이의 통찰을 따뜻함과 냉철함으로 풀어낸다.

A.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들고 맡은 역할이 많아졌다고 저절로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AI를 비롯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지식이나 업무 능력만으로 사람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오히려 어떤 선택을 하는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공동체 안에서 어떤 책임을 다하는 지와 같은 ‘태도’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지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무엇을 지키고 살아야 할지 고민된다면 역사 속으로 눈을 돌려볼까요? 그곳엔 우리보다 앞서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의 시행착오와 지혜가 담겨 있으니까요.

단종과 세조가 남긴 질문, 어떻게 얻을 것인가

조선의 여섯 번째 왕 단종은 왕실의 적통을 이어 원손, 세손, 세자, 국왕의 자리를 차례로 거친 정통성 있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촌 수양대군은 단종을 지키던 김종서와 안평대군 등을 반역죄로 몰아 계유정난을 일으켰고, 결국 왕위에 올랐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까지 옳았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조 정권 역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이 정당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결국 단종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후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신들은정치적으로 큰 힘을 갖게 되었지요. 하지만 단종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단종을 다시 왕으로 세우려 했던 사육신들이 반역자로 몰려 죽음을 맞았지만, 오늘날에는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거든요. 유배된 단종과 그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금성대군의 이야기도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지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왜 사람들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들을 기억할까요. 아마도 우리 마음속에 결과만큼 과정도 정당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회사에서 성과를 내고 목표를 이루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성과를 얻기까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중요합니다. 좋은 어른이라면 ‘무엇을 얻을 것인가’뿐 아니라 ‘어떻게 얻을 것인가’까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상처를 성장의 힘으로 바꾼 정조의 선택

비슷한 아픔을 겪고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로 정조와 연산군입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 갈등 속에서 가족을 잃는 큰 상처를 겪었습니다.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 씨가 사사된 것을 알고 갑자사화를 일으키는 등 분노를 폭정으로 표출했고, 결국 왕위에서 쫒겨났습니다.

정조 역시 열한 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일을 겪었습니다. 어린 정조가 느낀 슬픔과 분노는 얼마나 컸을까요. 하지만 정조는 그 감정을 보복으로 쏟아내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에 힘썼고, 규장각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재를 키우며 여러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영화 ‘사도’

물론 정조에게 분노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역시도 감정을 쉽게 드러내거나 울화를 참지 못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감정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아픔을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힘으로 쓸지,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힘으로 바꿀지 선택한 셈이지요. 우리에게도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계속 찾아옵니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그 감정을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힘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최재형에게 배우는 함께 사는 법

1909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뒤에는 많은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인물이 최재형 선생입니다. 가난한 소작인 집안에서 태어난 최재형 선생은 열한 살에 집을 떠났고, 러시아 상선 선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익힌 언어와 사업 감각을 기반으로 연해주에서 사업과 통역, 행정 관리 업무 등을 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지요. 그렇게 모은 재산은 모두 한인 사회와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배워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 연해주 곳곳에 학교 설립을 지원했고, 한인 사회 권익 보호에도 힘썼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자금과 무기, 사격 연습 장소 등을 지원한 것도 최재형 선생이었습니다.

©영화 ‘하얼빈’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는 최재형 선생이 침착하고 굳세며, 빠르고 용감한 인물로 기록돼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은 더 크게 돌려줄 줄 알았고, 한번 맺은 신뢰를 쉽게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누군가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최재형 선생은, 훗날 자신이 가진 것을 다시 수많은 사람에게 나누었습니다. 최재형 선생이 보여준 상생은 재산을 베푸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 받은 도움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그 힘이 공동체 전체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재형 선생에게 상생이란 서로가 살아갈 힘을 키우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역사 속 인물들이 완벽했기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흔들렸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만 좇지 않고 과정의 올바름을 살피고, 상처를 앞으로 나아갈 힘으로 바꾸며, 내가 가진 몫을 주변과 나누는 태도일 것입니다. 어쩌면 좋은 어른이 되는 길은,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신이 지켜야 할 기준을 떠올리며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을 이어가는 데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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